시각장애인을 위한 전시 기획, 어떻게 다를까?

 

전시를 기획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관람자 중심의 구성’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전시가 여전히 시각 중심으로 기획되어 있어 시각장애인은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최근에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접근 가능한 전시(Accessible Exhibition)’ 기획이 점점 늘고 있다.

그중에서도 시각장애인을 위한 전시 기획은 매우 복합적이고 섬세한 접근이 요구된다.

단순히 촉각 요소를 추가하는 것을 넘어 공간 구성, 안내 방식, 작품 해설, 심리적 배려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전시가 왜 특별해야 하는지 기획자가 고려해야 할 핵심 요소는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1. 전시는 ‘보는 것’이라는 고정관념

대부분의 미술 전시는 시각적 감상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전시장 조명, 패널 디자인, 작품 위치, 동선 구성 등 모든 요소가 ‘눈으로 보는 것’을 전제로 설계된다.

하지만 시각장애인은 이러한 전시에서 거의 아무런 정보를 얻을 수 없다. 심지어 접근조차 제한되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바로 시각장애인을 위한 전시 기획 전략이다.

 

2. 전시 기획의 새로운 패러다임: 감각의 다양성

시각장애인을 위한 전시는 단순히 '촉각 전시'가 아니다.
기획자는 청각, 촉각, 공간감각, 심리적 안정감 등 다양한 감각 요소를 총체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이를 통해 전시는 단지 '보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으로 전환된다.

예를 들어, 오디오 가이드 대신 촉각 지도 + 점자 해설 + 실시간 안내 시스템을 도입하거나

작품 일부를 만질 수 있게 구성해 감각적으로 내용을 전달하거나 작품과 감상자의 물리적 거리를 조절해 손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방식이 있다.

 

3. 공간 구성: 전시 동선의 재설계

시각장애인을 위한 전시는 공간의 '읽기 쉬움'이 매우 중요하다.
기획자는 출입구에서부터 전시장 내 동선, 작품과 작품 사이 간격, 장애물 유무까지 고려해야 한다.
점자 안내 패널, 벽면의 손잡이, 발 밑 바닥 유도선 등은 시각정보가 없는 관람자에게 중요한 길잡이가 된다.
공간 자체가 관람자의 ‘길잡이’가 되어야 하며 이는 시각 중심 전시와 완전히 다른 설계 철학을 요구한다.

 

4. 작품 해설: 감정과 정보를 함께 담다

작품 해설은 단순한 설명이 아니라, 감정과 스토리를 전하는 언어가 되어야 한다.
기획자는 작품의 외형, 재료, 크기뿐 아니라 작가의 의도, 작품이 주는 느낌까지 언어로 풀어내야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주관적 묘사를 배제하지 않는 것이다.
시각장애인도 감정과 정서를 느낄 수 있으므로 해설에는 '차갑다', '거칠다', '따뜻한 느낌이 있다'와 같은 묘사가 적극적으로 포함되어야 한다.

 

5. 기획자와의 협업: 장애 당사자의 목소리

성공적인 전시 기획은 ‘장애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당사자의 참여로 이루어진다.
기획자는 시각장애인 당사자, 점역 전문가, 촉각 예술가, 보조기기 개발자 등과 협업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 협업을 통해 전시 전반에 걸친 진정한 '접근성'을 확보할 수 있다.

단순한 형식적 배려가 아닌 실질적인 감상 경험을 설계하는 것이 핵심이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전시 기획은 단순한 장애인 접근성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예술의 본질인 ‘공감과 나눔’의 실현이며 동시에 감각 다양성을 포용하는 새로운 전시 철학이기도 하다.
앞으로 더 많은 전시 기획자들이 ‘보이지 않는 감상자’를 위한 전시를 고민하고 그들이 예술을 느끼고 해석할 수 있는 진정한 공간을 만들어가기를 기대해본다.